퇴직연금 통장을 들여다보며, 나이 듦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퇴직연금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나이

언젠가부터 ‘퇴직연금’이라는 단어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엔 누군가 퇴직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렸는데, 이제는 그 단어가 점점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우연히 들어가 본 퇴직연금 통장. 오래전에 회사에서 자동으로 불입되기 시작한 그 금액이 조금씩 쌓여 있는 걸 보며, 문득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건 단순한 돈이 아니다. 그건 내가 버틴 시간의 흔적이고, 아무 말 없이 일한 날들의 기록이다.

숫자는 작지만, 그 안의 무게는 크다

퇴직연금 통장의 잔고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그걸 들여다보는 순간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펼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몇 년 전 입사했을 때부터 시작된 그 숫자들은 내가 늦은 밤 야근을 했던 기억, 하루 종일 회의실에 갇혀 있던 날들, 무기력한 월요일 아침을 버틴 힘들이 숫자로 바뀐 것 같다.

이건 단순한 자산이 아니다. 이건 내 삶의 조각이다.

언젠가 나도 퇴직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겠지

요즘은 누가 퇴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이상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게 내 일처럼 느껴지고, 나도 언젠가 그 자리에 서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일까. 기쁘고 자유로울까, 아니면 막막하고 불안할까. 분명한 건, 그때가 오기 전에 나는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퇴직연금 통장을 보며 나는 마음을 정리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아직 준비할 시간이 있다고.

돈보다 중요한 건 준비하는 마음이다

퇴직연금이 많든 적든,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얼마나 돌보고 있는가’이다. 연금이 쌓여 있는 금액보다 내가 얼마나 내 인생을 곱씹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소소하게라도 노후를 상상해보고, 그 상상 속에 내가 평온하게 웃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그 마음이 준비된 사람은 숫자가 아니라 삶의 결로 퇴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퇴직연금 잔액을 보고 마음을 다잡는다

많은 건 아니지만, 그 통장을 다시 들여다보며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그 안엔 시간이 있고, 감정이 있고, 인내가 있다. 그 수치가 말해주는 건 단순히 얼마가 모였느냐가 아니라, 그걸 모으기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느냐다.

그래서 나는 퇴직연금 통장을 닫으면서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퇴직연금은 ‘미래의 나’와 대화하는 시간

그 숫자를 보는 순간 나는 문득 나이든 나를 떠올린다. 회사를 떠난 후에도 여전히 아침 햇살을 느끼고, 혼자 커피를 내리는 그 풍경. 마음이 조급하지 않은 얼굴로 거리를 천천히 걷는 나.

그 상상 속 나를 지키기 위한 현재의 준비. 퇴직연금은 그렇게,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건네는 편지 같다.

불안할수록 나를 붙잡아주는 잔고

세상이 불안할수록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절실해진다. ‘그래도 조금씩 쌓이고 있다.’ 그 한 줄의 숫자가 가끔은 어떤 위로보다 단단하게 마음을 붙잡아준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그 연금 잔액은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나이 듦이 두렵지 않다는 작은 용기

어쩌면 우리는 모두 두려운 거다. 몸이 약해질까봐, 혼자일까봐, 누군가에게 폐가 될까봐.

하지만 준비된 사람은 그 두려움을 조금 덜어낸다. 퇴직연금은 그런 두려움을 조금은 따뜻하게 감싸주는 이름이다.

오늘 나는 퇴직연금 통장을 들여다보며 이 말 한마디를 적는다.

“나이 듦은 상처가 아니라 성숙으로 가는 과정이라고.”